브레튼우즈 홰의는 1944년 개최된 연합국 44개국의 통화, 금융에 관한 국제회의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라는 국제금융체제를 구축하고 IMF와 IBRD의 출범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구축된 전후의 국제 금융·경제 체제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합니다.
1929년의 세계 공황에 대해 자본주의 각국은 각각 다양한 대응을 하여 영국의 스털링블록경제권과 미국의 뉴딜에 따른 남북 아메리카 경제권의 성립, 독일의 동방 생존권 구상,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등이 출현하였습니다. 이들 폐쇄적 고립적 블록경제는 서로 대립하여 저마다 독선적인 보호무역으로 돌아갔으며, 그로 인해 국제금융경제협력의 기반이 파괴되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것을 반성하고, 국제연합 이념 하에서 전후 세계의 평화 유지와 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기구가 구상되었습니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7월 미국의 뉴햄프셔주와 브레튼우즈에서 연합국 44개국의 통화담당자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정식으로는 연합국 통화금융회의라고 합니다. 이 회의에서 브레튼우즈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에 근거해 1945년에 국제통화기금(IMF) 협정 및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협정(통칭 세계은행)이 제정되었습니다. 소련도 대표단을 파견해 회의에 참가하고 협정에도 서명했지만 결국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우즈 협정에 의해 성립된 브레튼우즈 체제의 특징은 미국의 달러를 기축으로 한 고정환율제로 금태환을 통해 숨겨진 미국 달러화와 각국 통화의 교환비율(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무역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구조였습니다. 이 체제는 그 후 1973년까지 이어져, 전후 세계경제의 부흥을 뒷받침했습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것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금 1온스=35달러가 공정가격으로 여겨져 달러는 언제라도 금과 교환할 수 있고, 각국 통화는 각각 정해진 평가의 1%이내에서 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이 체제를 지탱하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통화안정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하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전후 복구와 개발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국제연합의 경제적 협력기구가 정비되게 되었습니다. GATT 브레튼우즈 체제의 전제는 세계 각국이 자유무역의 원칙에 서서 세계 경제 전체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947년에 성립된 것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며, 이에 따라 브레튼우즈 체제는 자본주의 경제권을 포괄하는 경제협력 체제가 되었습니다.
소련은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해 참석했습니다. 한때 적극적으로 움직여 국제통화기금에의 12억달러의 출자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소련은 브레턴우즈 협정에 조인했지만 비준을 하지 않았고 미국 등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결국 IMF에도 세계은행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IMF에 일단 가입한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해서는 압력을 가해 탈퇴시켰습니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를 포함한 코메콘(경제상호원조회의)을 창설해 브레턴우즈 체제와 겨루고, 또 외국 무역의 국가 독점(1918년부터)을 바탕으로 루블화 관리, 외화의 국가 독점, 관세의 강화 등 세계 경제로부터의 분리를 추진했습니다. 1987년에 들어서야 마침내 소련은 경제 고립주의를 벗고 세계 경제와의 교류를 시작합니다.
전후 세계 경제는 유일한 전쟁터가 되지 않았던 대국인 미국이 주도하게 되었고, 그 경제력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의 의향이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냉전이 심각해짐에 따라 서방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 재건이 최우선되었습니다. 따라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립, 또 전후 독립을 달성하고 국내 산업과 자원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신흥독립국가(제3세력)와도 이해관계 등이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됩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등으로 미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달러위기가 진행되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이나 서유럽경제가 부흥해 달러를 기축으로 한 통화체제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표방한 달러 금태환 중단, 달러의 실질적 평가절하라는 달러 쇼크로 붕괴되어 같은 해 말 스미스소니언 협정에서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려 했으나 세계경제의 변동을 막지 못하고 1973년부터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는 종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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